아름다운사회

머물지 않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머물지 않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by 한희철 목사 2019.12.04

벌써 2019년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에 이르렀습니다. 1년 달력 중 남아 있는 것은 달랑 한 장뿐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한 해를 가리키는 숫자에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해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자연 속에서 살았던 북미원주민들이 12월에 붙인 이름 중에는 ‘다른 세상의 달’ ‘침묵하는 달’ ‘존경하는 달’ ‘무소유의 달’ 등이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이름마다 그윽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소유의 달’이라는 말이 마음에 닿습니다. 어김없이 가는 세월 앞에서 우리 인생에 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겨집니다.
한 해를 보내는 시간을 맞으면 우리는 지난 일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새해를 맞으며 세웠던 계획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것은 이뤘고, 어떤 것은 마음뿐이었지요. 후회와 회한으로 남는 일도 있고, 보람과 즐거움으로 남는 일도 있습니다.
일을 이루는 것과 관련하여 <도덕경>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 果而不得已, 果而勿强 (과이부득이, 과이물강)이라는 구절입니다.(30장) ‘일을 이루고 나서 자랑하지 아니하고, 일을 이루고 나서 뽐내지 아니하고, 일을 이루고 나서 교만하지 아니하고, 일을 이룬 것은 원래 그렇게 되었던 것이고, 일을 이루되 강하게 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느 누구나 모든 일에 있어 좋은 결과와 성과를 기대합니다. 좋은 결과와 성과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일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일을 이룬 뒤에 그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떤 성과를 얻게 되면 그 여세를 몰아 더 많은 것을 이루려 하고 과시하려 합니다. 그런 우리를 두고 <도덕경>에서는 善者果而已, 不敢以取强(선자과이이, 불감이취강)이라 일러줍니다. 훌륭한 사람은 성과를 얻되 그만 둘 줄 알고, 감히 강압적으로 행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을 이루는 것과 관련하여 是以聖人處無爲之事(시이성인처무위지사),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 生而不有(생이불유), 爲而不恃(위이불시), 功成而不居(공성이불거), 夫唯不居(부유불거), 是以不去(시이불거)라는 말도 담아둘만 합니다.(2장) ‘그래서 성인은 모든 일을 무위로써 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베풀며, 만물을 이루어내되 그 가운데 어떤 것을 가려내어 물리치지 않으며, 낳고는 그 낳은 것을 가리지 않고, 하고는 그 한 것을 뽐내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머물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면 더욱 분발하되, 이룬 일이 있다면 나를 살필 일입니다. ‘공을 이루고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는 옛말을 우리 삶으로 경험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