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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바다’서 영화를 만나다

‘빛나는 바다’서 영화를 만나다

by 이규섭 시인 2019.11.15

“국제영화제 안 하는 지자체는 어디입니까?”
지난 8월 한 모임에서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게 됐다”는 김동호 위원장의 말에 지인이 던진 질문이다.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도시가 많아졌다는 조크와 함께 팔순 노인이 또 영화제 일을 맡았느냐는 함의가 담겼다. 김 위원장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특유의 추진력과 열정으로 세계적인 영화제로 키워내는데 기여했다. 2016년 부산영화제가 이념 논란으로 내홍을 겪을 때 조직위원장을 1년 남짓 맡아 평정한 뒤 물러나면서 “영화제 위원장은 다시 안 하겠다”고 한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개최 기간이 두 달 남짓 남았는데 제대로 준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깔렸다.
김 위원장은 실무 책임자가 찾아와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거절했다. 그 뒤 강릉시장이 두 번이나 찾아와 수락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삼고초려다. 재정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며 조직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해 수락했다. 대게 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지자체장이 맡아 행정과 재정지원을 하고, 집행위원장이 행사를 총괄한다. 김 위원장이 나서자 국민배우 안성기 씨는 자문위원장, 김홍준 씨가 예술감독을 맡아 힘을 보탰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지자체가 늘어나는 당위성을 김 예술감독이 명쾌하게 내놓았다. 강릉영화제 콘셉트와 디테일을 가다듬은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 부산국제영화제 하나 있으면 됐지 다른 영화제가 왜 필요하냐는 식의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서 “그 말은 한국에 국립중앙박물관 하나만 있으면 됐지, 경주나 부여 등 지역박물관은 물론 민간 박물관이 왜 필요 하느냐”는 말로 반박한다.
강릉국제영화제는 세 가지 키워드로 차별화했다. 문학성 짙은 다양한 영화들로 구성한 ‘영화&문학’, 영화 거장들과 신예 감독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마스터즈&뉴커머즈’, 문향과 관광의 도시 강릉에서 특별한 추억의 페이지를 마련한다는 ‘강릉, 강릉, 강릉,’을 키워드로 내세워 공감과 호응을 받았다.
지난 8일 열린 개막식에 참석해보니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영화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레드카펫를 밟았다. 피어스 핸들링 토론토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윌프레드 웡 홍콩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키릴라즈로고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하여 강릉국제영화제의 위상을 높였다. 개막작 ‘감쪽같은 그녀’의 허인무 감독과 배우 나문희, 김수안 등 출연진의 무대 인사에 시민들이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개·폐막 작품은 예약 6분 만에 매진됐고, 73편의 영화제 티켓은 개막전에 82%가 매진되어 성공을 예고했다. 개막식 때 일부 초청자와 참가자들이 신사임당 홀에서 스크린을 통해 레드카펫과 불꽃놀이를 지켜본 것은 현장감과 동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늦은 밤 경포대 ‘라카이 샌드파인’ 호텔에 여장을 푼 뒤 창문을 여니 ‘빛나는 바다’가 거대한 스크린이 되어 추억의 영화를 해변에 풀어놓는다. 라카이(LaKai)는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빛나는 바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