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동행同行

동행同行

by 정운 스님 2019.10.08

동북아시아[한국ㆍ중국ㆍ일본] 평화공동체 종교모임이 있다. 1년에 한번 하는데, 나라마다 돌아가면서 포럼을 개최한다. 올해는 일본에서 행사를 하는데, 필자가 한국 대표로 발표하기로 되어 있다. 원고 작성하기 전, 참고삼아 이전의 발표 원고를 읽었다. 그런데 재작년에 발표한 일본성공회 신부님 글에 잔잔한 감동을 받아, 여기에 소개키로 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대학원이 오클라호마주에 위치해 있어 나는 그곳의 작은 마을 교회에 다녔다. 그 교회에 일본인이 간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교회의 교인들이 나를 환영하지 않았다. 교회의 시니어 워든(SeniorWarden/신자대표)이 전쟁 중 일본군에게 잡혀 포로수용소에 곤란을 겪었던 공군장교 출신이었다. 1942년 태평양 전쟁 중에 파일럿 등 승조원 여덟 명이 일본군 포로로 잡혔는데, 3명은 총살, 1명은 포로수용소에서 학대와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4명이 살아남았다. 생존한 4명은 고문과 심한 학대를 받았는데, 이들 가운데 한명이 워든[신자대표]이었다. 워든은 일본인을 엄청 싫어했는데, 마침 교회 신자로 내[자신]가 들어간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신자들도 나를 꺼려했다. 4년 동안 교회 신자들과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으나 워든과는 ‘굿모닝, 굿바이’만 나누었다. 나는 전쟁 직후 태어났고, 전범이 아니기 때문에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무렵, 일본에 있는 약혼자와 결혼이 약속되어 있었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미국에 올 수 없어 신부의 팔을 잡고 걸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워든이 와서 ‘신부 부모가 오는가? 혹 미국에 못 온다면 내가 신부의 팔을 잡고 걸어도 되겠는가?’라고 먼저 제의했다. 그리스도교회의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예배당에 입당해서 제단까지 걸을 때, 신부의 아버지가 팔을 잡고 앞까지 걷는 관습이 있었다. 결혼식 당일, 워든이 신부의 팔을 잡고 중앙으로 걸어오는데,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하객들도 모두 울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워든이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Makoto, today, the war is over[마코토, 오늘 전쟁이 끝난거야]. 그 말을 들으면서 내게도 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워든과 나는 그리스도교도로서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겪은 후 성직자가 되었다.”
성경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고, 불교에서도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고, 원망을 쉬어야 원한이 풀어진다.”고 한다. 용서가 말만큼 쉬운 일인가?! 하지만 진정으로 용서가 되어야 함께 갈 수 있다[同行].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로 함께 간다는 것, 말만으로도 흐뭇하다. 앞의 이야기를 처음 읽으면서 함께 걷는다는 ‘동행’이라는 단어가 퍼뜩 떠올랐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함께 걸어가면 어떨까?! 종교인끼리라면 같은 종교인 끼리, 혹 종교가 다르더라도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고 동행이 된다는 것, 이럴 때, 인간은 꽃보다 더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