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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대한 편견과 생태교육

나무에 대한 편견과 생태교육

by 강판권 교수 2019.03.04

편견은 어떤 대상을 오해하는 요인이다. 어떤 대상을 단면만 보기 때문이다. 한 평생 편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다만 편견을 갖지 않고 살아가길 꿈꾸는 사람은 적지 않다. 중용을 강조한 공자는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편견의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나무에 대한 편견은 기본적으로 생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물에 대한 편견은 아주 심하다. 심지어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조차도 때론 심각한 편견을 갖고 있다. 예컨대 임학자 중에는 나무를 단순히 목재의 가치로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나무를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 같은 구분은 나무를 단순히 물질의 가치로 판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무는 단순히 물질의 가치로만 판단할 만큼 낮은 수준의 존재가 아니다. 유사 이래 나무를 목재의 가치로만 판단한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나무를 물질 가치로만 판단하는 것은 몰역사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를 물질 가치로만 판단하는 것은 나무에 대한 편견이다. 나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중의 대상이다. 한 존재를 존중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편견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편견은 성리학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성리학의 기본 철학을 담고 있는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의『태극도설』은 나무에 대한 편견의 씨앗이 담겨 있다. 주돈이의 작품에는 인간이 나무를 낳았다는 주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책에는 인간이 만물 중에 가장 우수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곧 나무가 인간보다 낮은 단계의 존재라는 뜻이다. 성리학의 세례를 강하게 받으면서 자란 한국 사람들은 은연중에 나무를 인간보다 낮은 수준의 존재로 생각한다. 이 같은 나무에 대한 인식은 조선시대 모든 성리학자들이 공유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인식도 어릴 적부터 이루어진 성리학적 학습 효과의 결과와 깊은 관계가 있다.
나무는 결코 사람보다 낮은 수준의 존재가 아니다. 존재론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나무가 인간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더욱이 나무는 인간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인간은 한순간도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현재처럼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았더라도 나무의 능력을 이길 수는 없다. 사실이 이 같은데도 인간이 나무를 자신보다 낮은 단계의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은 편견의 극치다.
인간의 나무에 대한 생태적인 인식은 선진사회의 중요한 지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무에 대한 편견은 곧 아직도 우리 사회가 선진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에서 생태교육은 아주 절실하다. 생태교육은 모든 존재에 대한 평등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에는 생태교육 과정이 없다. 요즘 성 평등과 관련해서 젠더 교육을 강조하지만 젠더 문제도 생태교육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태교육은 편견을 넘어 가치 평등의 선진사회를 이루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