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다락방에서 하룻밤을

다락방에서 하룻밤을

by 권영상 작가 2019.01.10

때로는 다락방에 올라가 자 봅니다. 거긴 이부자리가 없으니 이부자리와 전기담요와 베개를 주섬주섬 들고 올라가지요. 허리를 펴면 천정에 머리가 닿아 구부정히 다녀야 하는 좁은 공간입니다. 왜 이런 방을 만들었는지 집을 지은 목수의 뜻이 궁금할 때도 있습니다. 시골집이니까 누워 잘만한 방이 한 칸이고 밥 지을 공간이 있으면 될 터인데 말이지요.
다락방은 여름이면 지붕이 달아 후텁합니다. 평소에도 아래층의 더운 공기가 올라오지요. 날이 추운 겨울이면 춥고 냉합니다. 그런데 이 나이를 먹고도 가끔 거기 올라가 자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 다락방엔 나름대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 뭔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예전 마을 뒤에 움펑집이라고 있었습니다. 좀 낮은 땅에 지었대서 불린 집인데 그 집에 내 친구 둠에가 살았습니다. 집이 넉넉지 않아 감자니 보리 대신 둠에 아버지는 돈이라도 좀 쥐어볼까 싶어 둠에네 멧둔지밭에 참외를 심었지요.
참외가 노랗게 익어갈 무렵이면 둠에 아버지는 멧둔지 참외밭 모퉁이에 원두막을 지었습니다. 아래는 자전거며 참외 따는 그릇을 두고, 위층엔 누울 수 있게 멍석을 깔았습니다. 사방 바람벽은 비바람이나 막을 정도의 이엉을 둘러쳐 놓았지요. 언젠가 그 원두막으로 자러 가는 둠에를 보았습니다.
“나도 한번 자게 해줘!”나는 둠에에게 사정 아닌 사정을 했지요.
“울 아버지하고 같이 자. 안 돼!”
둠에는 뻐겼지만 둠에 아버지는 내 마음을 아셨는지, 내게 하룻밤 잠자리를 비켜주었지요. 아마 그날이 원두막에 올 수 없는 둠에 할머니 제삿날이거나 했습니다. 둠에는 선심 쓰듯 자기 아버지가 하던 대로 원두막 옆에 풀 모깃불을 놓아주고, 참외도 하나 슬쩍 따다가 슥슥 닦아먹어도 될 걸 깎아먹으라며 접칼도 집어주고.
그러고 밤이 이슥할 때 나는 둠에 꽁무니를 쫓아 원두막에 올랐지요. 그때 나는 너무도 놀랐습니다. 어른 키만큼 높이로 올라온 것뿐인데 밤하늘별이 주먹덩이처럼 보였고, 과일나무에 매달린 과일처럼 굵고 번쩍거렸습니다. 별들이 움씰움씰 움직이거나 별빛이 물결처럼 밀려왔다가 끊겼다가 또 밀려오고 그랬습니다. 높이가 요만큼만 달라도 세상이 놀랄 만큼 달라진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컴컴하고 무섭던 들판도 낮아 보여 도무지 무섭지 않았지요. 둠에네 멧둔지 참외밭엔 둠에네 할머니 묘가 있는데, 그런 것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혼자서도 잘 수 있다. 아부지가 혼자 안 둬서 그렇지.”
둠에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걸 나는 알았습니다.
둠에와 나는 담배내가 나는 홑이불을 덮고 누웠지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이웃 바닷가 마을의 파도 소리가 쏴아쏴아 누워있는 귓전에 날아왔습니다.
“니, 저 별 다 세 봤나?”
바람벽 사이로 훤히 내다보이는 별을 보며 내가 묻자 둠에가 두 손을 폈다 접었다 해보였지요. 열, 열, 열. 개수를 셀만큼 큰 별이 많다는 말일 테지요. 나는 둠에와 그 밤 바람벽으로 훤히 내다보이는 밤하늘별을 세다가 잠이 들었지요.
그 옛날의 원두막을 생각하며 전기담요에 불을 넣고 창문을 열어 하늘을 내다봅니다. 그 사이 별은 작은 것까지 쳐도 열, 열, 열이 안 되는 하늘이 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불속에 눕습니다. 둠에는 뭘하고 사는지 건너편 산에서 꾹꾹, 들꿩이 뒤척이는 추운 밤입니다.